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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사진
  • 입력 2007.12.24 00:00
  • 수정 2017.08.14 06:15
  • 호수 691

방우진 한나루해돋이축제추진위원장
"선구적이었던 어민으로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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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몰라보게 변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수십년의 세월은 내 모습도, 마을과 고장의 모습도 변하게 만들었다. 시간에 따라 점차 바뀌어 가는 내 모습을 보노라면 아쉬움과 서글픔이 교차하기도 한다.
 반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우정이다.

 첫 번째 사진은 연도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1980년대 초반이 아닐까 한다. 왼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김현욱 전 국회의원인데 김현욱 국회의원의 부인인 김혜선씨와 내 아내의 친분 덕분에 한진에 오셨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은데 맨 오른쪽이 김낙성 현 국회의원인데 저 당시 김현욱 의원의 보좌관을 맡고 있었다. 그 옆은 고영석씨였고 그 옆에 나다. 맨 오른쪽 사람은 이경훈 전 송악농협 조합장이고 그 옆은 강종환 현 기지시리 번영회장이다.

두 번째 사진은 충북의 3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앉아있는 왼쪽 사람이 나고 오른쪽 사람은 얼마 전 정년퇴임한 김재국 전 당진경찰서 경무과장이다. 내 군대동기인 김재국 과장과는 내무반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절친했었다. 내가 군생활하던 1971년 북파공작원들이 일으킨 실미도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이 때문에 비상이 걸리면서 며칠 동안 긴장 속에서 살았었다.
 저 당시 상부에서는 이들을 무장공비라고 했었지만 이들이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자폭한 후 귀대한 그날 저녁 그들이 북파공작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 사진은 한진 앞바다에서 김 양식장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1983년 황무지였던 간사지에 양식업을 도입한 사람이 나였다. 어민후계자로 선정된 내가 김 양식장을 처음 시작하고 이듬해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열린 전국 어민후계자 대회에서는 내가 시도한 방식이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사례발표를 하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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