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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일본여행를 다녀와서] 김유진 경영개발사업단 - 신주쿠와 신사참배의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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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외국을 여행했을 때를 기억하면 하루 전날부터 마음이 들떠 짐을 챙기고 준비하면서 큰 기대와 기쁨과 설레임은 누구나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국제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 10여개국을 공적 내지는 배낭여행으로 다녀왔기에 이번 일본방문은 그전의 기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일행 12명은 11월 12일 새벽 군민회관 앞 광장으로 모여야 해서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여행 가방을 끌고 15분만에 군민회관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같이 갈 모든 이가 각자 가방을 메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군청버스를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있었다.
 우리 일행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구름 사이로 40여분이 지났을까. 기내에서 나눠주는 기내식 스테이크를 먹고 난 후 1시간 40여분만에 나리타 국제 공항에 안착했다. 나리타 공항에서의 일본 출국 수속을 모두 마쳤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동양권이고 피부의 색깔이 동일해서 그런지 마치 우리의 그런 모습과 흡사하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다. 얼굴의 모습이며 행동, 거리의 모습 등등 크게 달라 보이질 않았다.
 저녁에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신주쿠 밤거리를 관광하는 행운을 얻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거리로 매우 나에게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가이드는 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을 하였으나 우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기대했던 만큼 화려하거나 환상적이질 못했다. 밤거리를 노니는 일본인의 패션 역시 명동과도 비교가 되질 않았다. 신쥬쿠 야경을 즐기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오는 길에 신주쿠 환락가의 밤거리를 통과하게 되었다. 아마 우리보다는 성문화가 매우 개방적임을 가게 앞 포스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신주쿠 거리를 아무런 거침없이 활보한 후에 도쿄 도청의 픽타워를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게 되었다. 도청의 옥상에 위치한 픽 타워는 동경 시내 야경을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려고 엘리베이터 안내원까지 밤늦게 까지 배치하여 안내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내심 놀라웠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 닛코로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한참을 달려 오전 10시쯤 쥬젠지 호수 근처 관광지에 도착하였다. 2시간여 걸려 오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색색의 가을잎과 단풍은 완연한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후지산은 눈이 녹지 않아 만설로 뒤덮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점심식사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일본의 3대 명장중의 하나라고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직접 쓴 친필을 식사 그릇 위에 복사하여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이었다. 가이드에게 내용을 물어보니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친필 명언으로 적어 놓았다고 한다. 복사상태가 매우 불량하고 필체가 좋지 않아 읽을 수가 없었으나 우리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까해 가방에 접어넣었다.
 이어 우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다는 신사를 견학하게 되었다. 정문이 아닌 옆문에 있는 거대한 아름다리 나무를 양옆에서 호위를 받으며 약 5분여 걸어가니 5층 건물 형태의 사찰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이드의 안내에 의하면 이 사찰 경내에 신사와 무덤이 함께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신사란 것은 나에게 말로만 들었지 생소하고 거북스런 느낌까지 들었다.
 신사는 자기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신 영령들의 혼백을 모아 두어 수시로 참배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일생에 이루지 못한 것을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영령들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역대 일본 수상들이 1, 2차 세계 대전 전범들을 모셔준 신사에 참배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해 우리나라와 중국이 유감을 표명하는 일이 바로 이것 신사 때문이라는 것을 직접 보아 알게 되었다. 신사를 참배하는 사람 대부분은 일본인으로 여타 외국인들은 이상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
 11월14일 하코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멀리 원뿔 모양의 후지산이 보였다.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1707년에 마지막으로 화산이 폭발한 이후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하얀 눈이 덮여 지나는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선착장을 지나 미리 대기해 놓은 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 목적지인 아타미 온천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바닷가 옆에 아주 적막하고 조용한 곳에 위치한 ‘아타미’라는 호텔은 대중 온천탕을 겸비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숙소를 잡은 후 대중탕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온천탕인줄 알았는데 우리의 해수탕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서 준비한 듯하며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의 상냥한 웃음과 말씨는 아직까지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다음날에는 요코하마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요코하마 부두인 선착장이었다. 요코하마는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멀리 보이는 빌딩숲과 현수교는 아주 장관이었다. 1시간여 부두를 돌아 유람선 대합실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요코하마 선착장 주변을 구경하게 되었다. 대합실의 상층은 나무를 이용하여 미적인 감각을 살려 수놓은 것이 사람을 끌기에 충분했다.
 11월16일은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가는 날이다. 우리는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 중에 일본에서의 마지막 목적지인 일본 천황이 살고 있다는 황거를 방문했다.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약 1㎞ 전방에는 공원이었다. 공원을 지나쳐 가는중에 수십명의 노숙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하고 깜짝 놀랐다. 더러는 낮잠을 자는 듯 했고 일부는 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는 듯 했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이 나리타 공항을 떠나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했을 때는 인천 국제공항의 주변은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어둠뿐이었다. 우리일행은 거의 9시가 넘어서야 처음 출발했던 당진군민회관 광장에 도착하여 각자의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동고동락 한 우리일행 12명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우리일행이 무사히 편안히 귀국할 수 있도록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행정팀장님과 우리 일행이 일본에서의 소중한 체험과 경험을 하게끔 기회를 마련해준 군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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